<CBS QT에서 옮겨왔습니다>
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나는 무명인입니다! 당신은 누구세요?”로 시작되는 시에서 에밀리 디킨슨은 사람들이 “유명인”이 되기 위해 기울이는 모든 노력에 짖궂게 도전하면서, 오히려 행복한 익명성이 주는 즐거운 자유를 옹호합니다. “얼마나 황량할까요? 유명인이 된다는 건! 얼마나 눈에 띌까요? 마치 개구리처럼 / 기나긴 유월 내내 감탄하는 늪지에 대고 / 자기 이름을 외처댄다는 것은!”
“유명인”이 되고자 하는 것을 포기하는 데서 오는 자유는 어떤 면에서 바울 사도의 증언을 떠올려줍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분명 “육적인 것을 신뢰할 만한 이유”(빌립보서 3:4, 현대인의 성경)가 되었던, 겉으로 보기에 인상적인 종교 자격증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에 비추어 볼 때 자신의 종교적인 성취가 얼마나 보잘것 없는 것인지를 깨닫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것들을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으려 함이라”(8절). 남아있는 그의 유일한 포부는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는”(10절)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유명인”이 되려고 스스로 애쓰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알고, 자신을 내어주신 주님의 사랑과 생명 안에서 우리 자신을 버리게 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다시 찾게 되며(9절) 마침내는 자유롭고 온전하게 됩니다.
성취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추구한 경우나 혹은 그외 다른 것에서 자유를 경험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 어떻게 교만이나 자신을 거부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될까요?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인정을 받기 위해 제가 ‘유명인’이 되려고 애쓸 필요가 없어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