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S TV QT에서 옮겨왔습니다>
1. 아닥사스다 왕이 왕위에 있을 때에 나와 함께 바벨론에서 올라온 족장들과 그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2. 비느하스 자손 중에서는 게르솜이요 이다말 자손 중에서는 다니엘이요 다윗 자손 중에서는 핫두스요
3. 스가냐 자손 곧 바로스 자손 중에서는 스가랴니 그와 함께 족보에 기록된 남자가 백오십 명이요
4. 바핫모압 자손 중에서는 스라히야의 아들 엘여호에내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이백 명이요
<아닥사스다 왕이 왕위에 있을 때에 나와 함께 바벨론에서 올라 온 족장들과 그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1절).
동양인들은 시간을 단선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어떤 시간, 누구의 시간이든 거기에는 그 시간 만의 고유한 개성이 있다고 믿습니다. 이것은 실로 우주 삼라만상과 인간의 삶이 서로 얽혀 복잡하게 돌아가는 한편의 대하 드라마와도 같은 구조와 이해를 가집니다. 그래서 그것은 <지금은 어떤 때인가?> 하는 물음으로 발전하고, 또 <이런 때는 무엇을 해야 가장 올바른가?> 하는 문제의식으로 연결됩니다. 즉 이는 모든 것이 다 제 나름의 때가 있는 법이고, 만사는 시의적절해야 비로소 뭔가를 이룰 수 있다는 깨달음에서 비롯된 시간관에 다름 아닙니다. 그래서 동양인들은 그 때를 잘 분별할 줄 아는 혜안을 얻는 것이 지혜의 첩경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이런 동양적 시간 개념은 전도서의 가르침과도 매우 닮아 있습니다. 전도서 3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질 때가 있고 돌을 다시 거둘 때가 있으며 잃을 때가 있고 다시 찾을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다시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1-8절).
그럼에도 우리 인생들은 어리석어서 시간의 겉모습만 볼 뿐 그 내면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깨닫고 읽어내는 능력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실수를 거듭하지만 또 다시 잘못이라는 덫에 걸리고 맙니다.
B.C. 458년 에스라 시대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비록 그 수가 미미한 수준이었으나 끝끝내 하나님의 길을 택하고 에스라와 함께 귀환을 결단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이런 소수의 남은 자들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시고 역사를 새롭게 하십니다. 그래서 본문은 그들을 잊지 않고 그 명단을 꼼꼼히 기록하여 후대들에게 남기고 있습니다.
-B.C. 458년 에스라와 함께 2차로 귀환한 자들은 모두 몇 명이었습니까?
-본문이 귀환자들의 명단을 최대한 자세히 밝히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에스라가 귀환하여 단행한 개혁의 내용들을 적어보십시오.
주님, 저희들이야 말로 <남은 자>들입니다. 이 세상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주님의 일, 주님의 몸된 교회를 재건하는 일이라면 항상 발 벗고 나서서 자원하여 힘을 보태야 합니다. 에스라 시대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그랬습니다. 비록 많지는 않았지만 기꺼이 에스라와 함께 귀환을 결심하고 예루살렘으로의 복귀를 감행했습니다. 그랬기에 그들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어 오늘 저희들에게까지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결단과 믿음과 성전에 대한 애정을 오늘 저희도 깊이 배우고 깨닫게 해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