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S TV QT에서 옮겨왔습니다>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2.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
13.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주위에 있더니
14.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
15.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16.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사람 수효대로 한 사람에 한 오멜씩 거두되 각 사람이 그의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거둘지니라 하셨느니라
17.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18.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
19.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두지 말라 하였으나
20. 그들이 모세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21. 무리가 아침마다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고 햇볕이 뜨겁게 쬐면 그것이 스러졌더라
인생을 살다가 하나님을 불평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의 원망과 불평에 대해 어떻게 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출애굽기는 내용 전체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늘 말씀에 그들이 먹을 것이 없자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합니다. 그들의 원망과 불평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홍해 앞에 있었을 때도, 홍해를 건너서 마라에 있을 때도… 수도없이 그들은 불평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그 불평까지도 응답하십니다. 불평은 나쁜 것이긴 하지만, 반면에 불평을 한다는 것은 불평하는 대상을 의지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우리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끊임없이 불평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불평에 대해서도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정말 문제는 우리가 문제와 상황에 부딪혔을 때조차도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불평도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증거로 삼으십니다.
오늘 하나님이 그 불평에 대한 응답으로 만나를 주시는데, 한 가지 원칙을 주십니다. 아침에 이슬이 내릴 때 만나가 내리는데, 어떤 사람은 많이 거두고 어떤 사람은 적게 거둡니다. 어떤 사람은 몸이 아파서 거두러 나가지 못하여 먹지 못하고, 어떤 사람이 힘이 있어 많이 거두고 쌓아둡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정하신 원칙이, 하루가 지나면 그것을 썩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만나를 주실 때,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같이 누리도록 만나를 내려주시는데, 그것을 어느 한 사람이 많이 취하여 불공평하게 배분되는 것에 대해서 경고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신 주기도문에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에게”가 아니f라 “우리에게”입니다. 이것을 만나의 메시지와 연결됩니다. 어떤 사람이 많이 거두어 창고에 쌓아두고 내어놓지 않음으로 인하여, 누군가는 굶고 눈물겨워하는 것을 보고 다음 날에 그것을 썩게 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쌓아 둘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많이 거두면 몸이 불편하여 거두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누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중요한 뜻입니다.
이스라엘에는 두 개의 바다가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바다라고 표현하지만 사실은 강입니다. 갈릴리 바다와 사해입니다. 갈릴리 바다와 사해는 연결되어 있어서 갈릴리 바다의 물이 흘러 사해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갈릴리 바다는 살아있고, 사해는 죽어 있습니다. 사해가 죽은 바다인 이유는 흘려보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것도 흘려보내지 않으면 당장은 행복할 것 같지만, 그것은 분명 썩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흘려보내며, “나의 양식”이 아닌 “우리의 양식”을 위해 기도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 우리는 “일용할 양식”이 아닌 “쌓아 놓을 양식”을 위해 걱정하고 기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삶을 돌아봅시다.
– 나에게 주신 은혜를 흘려보내기 위해 결단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주님! “최소한 이 정도는 나에게 필요하다.”고 간구했던 것들이 욕심이었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흘려보내지 못하는 자세였음을 회개합니다. 오늘 하루 “어떻게 쌓을지”가 아니라 “어떻게 흘려보낼지”를 기도하고 순종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