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S TV QT에서 옮겨왔습니다>
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2.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3.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4.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5.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6.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7. 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8.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더라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기억하십니까? 두렵고 무서운 하나님으로 기억하십니까? 아니면, 사랑과 기쁨의 하나님으로 기억하십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믿을 때, 웃기보다는 심각해집니다.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시고 책망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하니까 하나님 앞에서 경직됩니다. 이것은 오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흔히 ‘실없이 웃는다.’는 표현을 씁니다. 그리스도인은 ‘실없이 웃는 사람들’입니다. ‘실없이’라는 말은 ‘이유 없이’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유 없이 웃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창세기 21장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이후에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장입니다. 사라는 하나님이 말씀은 하셨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이루어졌을 때, 이렇게 고백합니다.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그래서 그 아들의 이름을 “이삭(웃음)”이라고 짓습니다. 사라는 잃어버렸던 웃음을 찾게 됩니다. 성경에 하나님을 진실로 만난 사람들은 웃게 됩니다. 진정한 웃음을 되찾게 됩니다.
아이들은 하루에 평균 400번 이상 웃는 반면, 어른들은 하루에 15번 웃는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은 이것이 포함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때문에 그냥 ‘이유 없이’ 웃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하나님 또한 그런 우리를 보시며 웃으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아직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은 때라도 그 약속을 믿고 웃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의 이 기쁨이 우리에게 끝나는 것은 하나님의 원하는 기쁨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기쁨으로 인하여 우리와 만나는 사람들이 웃게 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원하시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사라와 같은 고백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이 은혜가 내가 웃을 뿐만 아니라 그 웃음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렸던 웃음을 찾는 웃음의 통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하루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 오늘 하루를 살면서 웃음을 선언해봅시다. 하나님의 주신 기쁨을 빼앗아가는 상황들과 환경 속에서 세상의 어떤 것도 하나님이 주신 기쁨을 빼앗아갈 수 없다고 선언해 봅시다.
– 나의 웃음을 통해 나와 만나는 사람들이 잃어버렸던 웃음을 회복하게 될 것을 기대하며 우리를 사용하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며 하루를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