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S TV QT에서 옮겨왔습니다>
7. 내가 또 다시 해 아래에서 헛된 것을 보았도다
8.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이 홀로 있으나 그의 모든 수고에는 끝이 없도다 또 비록 그의 눈은 부요를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는 이같이 수고하고 나를 위하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가 하여도 이것도 헛되어 불행한 노고로다
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10.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11.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2016년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1인 가구’가 27.2%라고 합니다. 3명 중에 1명은 혼자 산다는 이야기압니다. 그래서 이제는 ‘독거’, ‘혼밥’이라는 말이 어색하기 않습니다. 이렇게 되고 있는 한 가지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혼자 있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하며 혼자이기를 소망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는 이유는 주의에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정말 홀로 존재한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기쁜 일이 있어도 같이 기뻐할 사람이 없고, 무언가를 이루었는데 함께 나눌 계획이 있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혼자이고 싶다.”는 말은 아마도 “잠시 혼자이고 싶다.”는 말일 것입니다.
오늘 전도서 말씀에 등장하는 사람도 그런 상황 가운데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혼자이면 힘들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사는 이유는 세상 속에서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습니다. 성경의 인물들을 보면, 이런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이삭은 주위 사람들이 계속 우물을 빼앗으며 분쟁하였고, 야곱은 삼촌에게 20년을 속았으며, 요셉은 형들의 손에 팔렸고, 다윗은 장인인 사울과 아들인 압살롬에게 죽을 뻔합니다. 이 세상은 사람이 사는 곳이기에 다툼과 아픔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관계에서도 이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 가운데 우리는 상처를 받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사람들 때문에 상처받은 일보다 사람들 때문에 위로받고 기쁘고 행복했던 일이 훨씬 더 많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그것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가족 때문에 힘들다고 말하지만, 가족 때문에 얼마나 많이 기쁘고 얼마나 많은 행복한 경험을 했는지를 기억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기쁜 일은 당연히 여기며 잊어버리고 나쁜 기억만을 오래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기억 구조는 나쁜 일을 오랫동안 기억하는 구조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쁜 기억이 있으면, 그 동안의 좋은 기억들을 전혀 떠오르지 않고 오로지 그 기억이 모든 것을 좌우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트라우마’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만남을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기쁨과 은혜가 훨씬 많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사람이 함께하면 ‘두 겹줄’이라고 해야 맞는데, 왜 ‘세 겹줄’이라고 했는지 궁금합니다. 이것에 대해서 한 주석서는 이것이 “사람과 사람관계 속에 하나님이 함께하셔야 온전한 관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세 겹줄”이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관계 속에 함께 하시면 우리의 관계는 온전한 관계를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그 속에 하나님이 주신 기쁨을 있음을 믿고, 힘든 관계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해 주셔서 ‘세 겹줄’의 관계를 맺어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내가 피하고 싶은 관계가 있다면, 그 관계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복을 기억해 보고 하나님이 그 관계가운데 함께 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도전해 봅시다.
주님! 내가 받은 상처 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힘들어 할 때 주님 함께 해 주시옵소서. 관계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복이 훨씬 큼을 보게 하시고, 주님이 ‘세 겹줄’이 되어 주심을 믿고 먼저 선을 행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