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S TV QT에서 옮겨왔습니다>
10. 비록 그가 사자 같은 마음을 가진 용사의 아들일지라도 낙심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무리가 왕의 아버지는 영웅이요 그의 추종자들도 용사인 줄 앎이니이다
11. 나는 이렇게 계략을 세웠나이다 온 이스라엘을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바닷가의 많은 모래 같이 당신께로 모으고 친히 전장에 나가시고
12. 우리가 그 만날 만한 곳에서 그를 기습하기를 이슬이 땅에 내림 같이 우리가 그의 위에 덮여 그와 그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을 하나도 남겨 두지 아니할 것이요
13. 또 만일 그가 어느 성에 들었으면 온 이스라엘이 밧줄을 가져다가 그 성을 강으로 끌어들여서 그 곳에 작은 돌 하나도 보이지 아니하게 할 것이니이다 하매
14.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의 계략은 아히도벨의 계략보다 낫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물리치라고 명령하셨음이더라
<나는 이렇게 계략을 세웠나이다 온 이스라엘을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바닷가의 많은 모래 같이 당신께로 모으고 친히 전장에 나가시고>(11절).
후새가 아히도벨의 전략대로 신속히 다윗의 뒤를 쫓는 방식을 포기하도록 압살롬을 회유하는 대목입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시간을 벌어 다윗 왕으로 하여금 당시의 그 위급한 상황을 모면케 하려는 방책이었습니다(15-26절). 후새는 한마디로 압살롬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총병력을 소집하여 그들을 진두지휘하며 전장에 나서라는 것이었습니다. 압살롬의 영웅의식을 자극하고 부추긴 것입니다.
후새의 이런 제안이야말로 새로운 통치자로 등극할 압살롬에게는 몹시 매력적인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압살롬과 그의 부하들의 마음을 교묘히 움직여 당시 상황으로서는 최선책이었던 아히도벨의 계략을 뒤집은 후새의 뛰어난 화술과 전략을 확인할 수 있는데 실은 그게 다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물리치라고 명령하신>(14절) 여호와의 역사하심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후새의 배후에 그 모든 일을 간섭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비록 다윗의 죄는 징계하실지라도 그의 생명과 나라는 끝까지 지켜주시겠다고 하신(7:14-16, 12:9-13) 약속을 지켜 아렉 사람 후새를 통해 아히도벨의 계략을 파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의 계략은 아히도벨의 계략보다 낫다 …>(14절).
이게 우연이 아니라 악인들의 불의한 계략을 무력화 하시려는 하나님의 역사였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는 늘 하나님의 영으로 우리의 정신이 가득 채워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도 생명을 능멸하고 질식시키는 잘못된 계략들을 하나둘 파기하며 고쳐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미움과 저주로 얼룩진 마음과 악한 언어들로부터도 우리 자신을 지켜갈 수 있을 것입니다. 폭력과 살상, 미움과 파괴에 오염되고 사로잡혀 있는 정신과 언어 세계를 정화하고 사랑과 평화, 치유와 공존의 희망으로 이 세상을 채울 수 있는 길은 오직 본문의 이 후새처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모험하고 결단하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나라와 다윗 왕을 구하고자 결단하고 모험한 후새에 대해 평가해 보십시오.
-당신도 어떤 선한 일에 대해 그게 곧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확신해 본 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하나님이 역사의 참된 주인이심을 믿으십니까?
주님, 아히도벨의 상황판단과 계략은 옳았습니다. 만약 그대로 작전에 돌입했다면 다윗의 안전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후새의 등장으로 그 위기를 넘겼습니다. 후새를 부른 것도, 또 후새의 전략에 더 공감한 것도 다 압살롬이었고, 또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저희로 하여금 다시 한 번 하나님이 역사의 진정한 주인이심을 깊이 깨닫게 해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