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S TV QT에서 옮겨왔습니다>
1. 사울이 죽은 후에 다윗이 아말렉 사람을 쳐죽이고 돌아와 다윗이 시글락에서 이틀을 머물더니
2. 사흘째 되는 날에 한 사람이 사울의 진영에서 나왔는데 그의 옷은 찢어졌고 머리에는 흙이 있더라 그가 다윗에게 나아와 땅에 엎드려 절하매
3. 다윗이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 왔느냐 하니 대답하되 이스라엘 진영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하니라
4.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너는 내게 말하라 그가 대답하되 군사가 전쟁 중에 도망하기도 하였고 무리 가운데에 엎드러져 죽은 자도 많았고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도 죽었나이다 하는지라
5. 다윗이 자기에게 알리는 청년에게 묻되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이 죽은 줄을 네가 어떻게 아느냐
6. 그에게 알리는 청년이 이르되 내가 우연히 길보아 산에 올라가 보니 사울이 자기 창에 기대고 병거와 기병은 그를 급히 따르는데
7. 사울이 뒤로 돌아 나를 보고 부르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한즉
8. 내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하시기로 내가 그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이니이다 한즉
9. 또 내게 이르시되 내 목숨이 아직 내게 완전히 있으므로 내가 고통 중에 있나니 청하건대 너는 내 곁에 서서 나를 죽이라 하시기로
<아히도벨이 또 압살롬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사람 만 이천 명을 택하게 하소서 오늘밤에 내가 일어나서 다윗의 뒤를 추적하여 … 내가 다윗 왕만 쳐죽이고>(1-2절).
<오늘밤>이란 바로 다윗 왕이 예루살렘에서 급히 피난길에 오른 날 밤을 가리킵니다. 아히도벨의 전략은 여유를 주지 말고 뒤따라가 즉각 왕을 처치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러한 아히도벨의 상황판단은 정확했습니다. 당시 다윗은 피곤하여 바후림 근처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곳은 예루살렘에서 밤사이에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는 요단강 부근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때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계략대로 반란군을 급파했다면 다윗은 꼼짝없이 그들의 칼에 죽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그 말을 옳게 여기더라>(4절).
<옳게 여기더라>는 뜻의 히브리어 <야솨르>는 <좋아하다, 기뻐하다>는 말인데, 자기의 친아버지인 다윗을 신속히 뒤따라가 죽이겠다는 제안에 대해 기뻐했다는 압살롬이나 지금껏 섬겨오던 자신들의 왕을 쳐죽이자는 전략에 좋아했다는 이스라엘 장로들의 반응이 실로 놀랍고 경악스러울 뿐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압살롬이 <아렉 사람 후새도 부르라 그의 말도 듣자>(5절)고 제안했습니다. 이는 다윗을 지키고 구원하고자 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대수롭지 않은 듯 보이는 압살롬의 이 작은 제안 하나가 결국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바꾸어 놓기 때문입니다.
<후새가 압살롬에게 이르되 이번에는 아히도벨이 베푼 계략이 좋지 아니하니이다>(7절). 그러면서 <왕의 아버지와 그의 추종자들은 용사라 그들은 들에 있는 곰이 새끼를 빼앗긴 것 같이 격분하였고 왕의 부친은 전쟁에 익숙한 사람인즉>(8절) 그런 작전에 결코 당하지 않을 것이라며 아히도벨의 계략을 실행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인간은 어리석어 역사의 겉모습만 보고 그 내면에 담긴 하나님의 깊은 뜻을 읽어내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실수를 거듭하고도 다시 잘못이라는 치명적인 덫에 걸리고 맙니다. 결국 하나님이 후새를 통해 압살롬에게는 뼈아픈 패배를, 다윗에게는 극적인 승리를 안기십니다.
-압살롬이 아히도벨보다 후새의 계략이 더 낫다고 판단한 근거는 무엇이었을까요?
-후새가 왜 8절에서 <새끼를 빼앗긴 곰> 얘기를 했을까요?
-본문을 통해 당시 압살롬에 대한 백성들의 민심을 가늠해 보십시오.
주님, 아히도벨의 상황판단과 계략은 옳았습니다. 만약 그대로 작전에 돌입했다면 다윗의 안전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후새의 등장으로 그 위기를 넘겼습니다. 후새를 부른 것도, 또 후새의 전략에 더 공감한 것도 다 압살롬이었고, 또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저희로 하여금 다시 한 번 하나님이 역사의 진정한 주인이심을 깊이 깨닫게 해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