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S TV QT에서 옮겨왔습니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52.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혹시 지난주에 고급 레스토랑에서 근사하게 식사를 했다고 해서 한 주 동안 전혀 배고프지 않아서 식사를 안 하신 분이 있으십니까? 아마 그런 사람은 없을 겁니다. 아무리 고급스러운 음식을 잘 먹어도 하루만 지나면 배고픔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의 영혼은 지난주에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매일 우리 영혼이 전혀 배고프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이상하게 육체적인 것을 그렇지 않으면서, 영적인 영역에서는 지난달에, 1년 전에 받은 은혜로도 살아갈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체를 만드실 때 매일 먹지 않으면 안 되도록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이유는 육체처럼 영도 매일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오늘 요한복음 6장은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후에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 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예수님이 사람들을 기적을 통해 먹이신 이유는 계속해서 육체를 먹이시기 위한 것이 아니셨습니다. 육체를 먹이심으로 인해 예수님이 ‘영원한 생명의 떡’임을 깨닫고 예수님을 먹게 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때 오늘 말씀을 예수님께서 하십니다.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예수님은 지금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어제 육체의 빵을 먹지 않으면 살지 못하는 것처럼, 오늘 너희의 영이 하나님의 것으로 채우지 못하면 영적으로 얼마나 허덕이는지를 봐라.”
우리가 교회에서 성찬예식을 할 때나 삶에서 육체를 위해 먹을 때, 우리는 “아, 우리에게 영적인 양식이 필요하지? 내 영혼이 지금 갈급해 하고 있지?”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어디를 가든지 볼 수 있도록 이마와 손목과 문설주와 모든 곳에 붙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육체의 양식을 통해 영적 갈급함을 깨닫고 주님의 말씀을 먹는 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와 예레미야 시대를 보면 영적으로 잘못되어 있는데도, “평안하다. 평안하다.”말하는 사람들을 성경은 거짓 선지자라고 말합니다. 매일 영적인 양식을 못 먹고 있는데, 괜찮다고 하나님은 이해해 주실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사단의 속임수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끼니를 거르면 살 수 없는 것처럼 영적인 갈급함에 민감하게 살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 오늘 육체의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밥을 먹을 때마다 우리의 영은 얼마나 배고픔을 느끼고 있는지를 묵상해 봅시다. 그리고 그 갈급함으로 짧은 시간이라도 영적인 것을 먹기로 결단합니다.
주님! 아무리 바빠도 육체의 배고픔은 견디지 못하고 채우면서, 내 영이 얼마나 배고파하며 갈급해 하는지에 대해서는 둔감했던 우리의 어리석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오늘 육체의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는 것처럼 영적인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는 자로 살아가기를 결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