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1:33-35>
예수님께서 우신 이유
NIV 영어 성경 주석에는 예수님께서 우신 이유가 나사로의 죽음을 보고 슬퍼서 우신 것이 아니라고했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이 해석에 동의 하는데 왜냐하면 죽은 나사로가 곧 살아서 무덤 밖으로 나올 줄을 예수님은 미리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우셨을까요?
베다니의 나사로 사건은 11장 1절부터 시작합니다.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단강 저편에 계시던 예수님께서는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죽을 병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하시며 죽음과 부활에 관한 말씀을 비유로 가르치다가 베다니에 가셨을 때는 이미 나사로가 죽은 지 4일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주님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죽지 않을 것을.”이라며 마리아가 통곡하고 있었으며 많은 유대인들도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예수님의 마음은 비통하였습니다. “죽어도 살겠고…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열심히 가르쳤건만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하고 슬퍼하며 울고 있는 그들이 너무나 불쌍했습니다. 예수님의 눈에서는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 내렸고 그곳에 있던 일부 유대인들은 그 눈물을 보고 “그가 평소에 나사로를 얼마나 사랑했기에…”라고 했습니다(36절) 어쩌면 하나님이셨지만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셨던 예수님의 복합적인 눈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나사로가 무덤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마리아와 모든 유대인들이 더 이상 울지 않았습니다. 세상에는 아직도 울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울지 않아야 합니다. 나사로가 살아난 사건을 다 알기 때문입니다. 울고 있는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주님의 눈물도 닦아드리는 효도하는 성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