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S TV QT에서 옮겨왔습니다>
34. 입다가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35.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니
36. 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의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하니라
37. 또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일만 내게 허락하사 나를 두 달만 버려 두소서 내가 내 여자 친구들과 산에 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하니
38. 그가 이르되 가라 하고 두 달을 기한하고 그를 보내니 그가 그 여자 친구들과 가서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고
39. 두 달 만에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아온지라 그는 자기가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였더라 이것이 이스라엘에 관습이 되어
40. 이스라엘의 딸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더라
<…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35절).
이는 입다의 서원, 즉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를 내가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31절)하는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이 터무니없는 비극은 당시 입다가 이스라엘의 율법보다도 가나안 문화에 얼마나 깊이 젖어 있었는지를 잘 말해줍니다.
성경은 분명 사람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행위를 엄격하게 금하고 있습니다(레 18:31, 20:2, 신 21:31, 18:10). 그럼에도 입다는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고 괴롭게 하는 자>라며 오히려 딸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고 있고, 딸에게 닥칠 비극을 애통해 하기 보다 오히려 자신의 괴로움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딸은 원망이나 불평 한 마디 내뱉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복종하는 태도가 놀랍습니다.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의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36절).
그녀는 그게 아무리 부당하다 해도 아버지의 경솔한 행위에 대해 딸이 하나님 앞에서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게 옳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면서 아버지 입다에게 <나를 두 달만 버려두소서. 내가 내 여자 친구들과 산에 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37절)합니다.
입다의 딸은 하나님에 대해서는 신실했고, 부모에게는 절대 순종적이었을 뿐 아니라 아버지의 명예를 지키는 일에도 담대했습니다. 그게 분명 잘못된 서원이었지만 서원을 한 이상에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위기의 순간에는 서원을 하고 나중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약속을 저버립니까? 온갖 교묘한 말과 합리화하며 그 서원을 파기합니다. 서원은 인격의 문제요 신앙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극히 조심해서 해야 하지만 일단 하나님 앞에서 한 번 행한 서원이라면 자기에게 해로울지라도 지키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시 15:4, 민 30:2).
-입다의 서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입다의 딸의 순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혹 하나님께 서원하고 안 지킨 게 없습니까?
주님, 입다의 경솔한 서원이 얼마나 큰 비극을 초래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날이 기쁨은커녕 가장 슬프고 비통한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놀라움을 금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입다의 딸의 태도였습니다.
불행한 일이지만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며 순종했다는 것이 옵니다. 죽기까지 복종한 입다의 딸의 믿음을 본받게 해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