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S TV QT에서 옮겨왔습니다>
12.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13. 그리 할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가 성물을 내 집에서 내어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기를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명령대로 하였사오니 내가 주의 명령을 범하지도 아니하였고 잊지도 아니하였나이다
14. 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부정한 몸으로 이를 떼어두지 아니하였고 죽은 자를 위하여 이를 쓰지 아니하였고 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사오니
15. 원하건대 주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서 보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내리소서 할지니라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12절)란 안식년을 기준으로 세 번째 해가 되는 해, 곧 제3년과 제6년을 가리키는데 이 때는 <제2의 십일조>(14:22-23)를 드리는 해였습니다. 그리고 제2의 십일조는 성전에 드리는 대신 성 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 고아와 과부를 위한 구제비로 사용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모든 소산>(12절)이란 토지 소산의 십일조뿐 아니라 가축의 새끼를 의미합니다. 이렇듯 이스라엘은 모든 소산의 십일조 뿐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약자들을 위한 제2의 십일조까지 구별해야 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본문은 십일조를 <성물>(13절)이라고도 합니다. <성물>이란 히브리어로 <코데쉬>이며 이는 <바쳐진 분깃>이란 뜻으로 십일조야말로 당연히 구분하여 하나님께 <바쳐야 할 하나님의 몫>이란 의미입니다. 본문은 이를 주의 명령이라고 합니다.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명령대로 하였사오니 내가 주의 명령을 범하지도 아니 하였고 잊지도 아니 하였나이다>(13절).
어떤 사람들은 십일조의 부당성을 강변합니다. 십일조 제도는 율법의 산물이고 따라서 지금은 복음 시대이므로 이 시대에 십일조를 강조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비복음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주장도 부분적으로는 타당한 측면이 있으나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율법시대의 제도라는 말은 맞지만 그렇다고 폐기를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고, 이를 복음적으로 재해석하여 그 근본정신을 놓치지 않고 실천하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과제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소산의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십일조를 하고, 또 매 세 번째 해마다 제2의 십일조를 함으로써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고 믿었던 것은 율법적 십일조였습니다. 그러나 복음적 십일조는 십분의 일이 아니라 십분의 십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비록 십일조를 바치더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면 언제든 십분의 십을 다 바치겠다는 각오와 결단의 의미를 담아 드리는 것입니다. 십일조로 내 할 일을 다했다가 아니라 십의 십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십의 일을 드리며 실천적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십일조에 이해와 믿음이 <십의 일>이면 율법이고, <십의 십>이면 복음입니다.
-이스라엘 전통의 <십일조>와 <제2의 십일조> 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십일조 제도의 이 시대 유효성에 관한 당신의 견해는?
-실례지만 당신은 지금 십일조 생활을 하십니까? 안 하신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주님, 오늘 본문은 십일조를 <성물>이라고 했고, 또 <여호와의 명령>이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시대에 와서는 십일조의 위상이 많이 흔들리고 있음을 봅니다. 부디 십일조를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그게 율법의 산물이라는 것으로 정당화하지 않도록 저희 모두를 성령으로 단속해 주시옵소서. 율법이 아니라 복음적으로 조명하여 십일조 제도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저희를 지켜주시옵소서. 십일조 제도를 통해 이 피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저희들의 청지기 됨을 더욱 깊이 인식하고 깨닫게 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