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S TV QT에서 옮겨왔습니다>
1.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주하는 이 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
2. 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거기서 각각 한 재목을 가져다가 그 곳에 우리가 거주할 처소를 세우사이다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가라 하는지라
3. 그 하나가 이르되 청하건대 당신도 종들과 함께 하소서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내가 가리라 하고
4. 드디어 그들과 함께 가니라 무리가 요단에 이르러 나무를 베더니
5.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쇠도끼가 물에 떨어진지라 이에 외쳐 이르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것이니이다 하니
6.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어디 빠졌느냐 하매 그 곳을 보이는지라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 쇠도끼를 떠오르게 하고
7. 이르되 너는 그것을 집으라 하니 그 사람이 손을 내밀어 그것을 집으니라
6장에는 서로 주제가 다른 세 가지 이야기가 나열식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① 엘리사가 선지자 생도들을 어떻게 이끌었으며 그 선지 학교가 어떻게 발전해 가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② 요아스 왕이 엘리사를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고 불렀던 것처럼 엘리사의 사역이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에 두는 것임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③ 사마리아성에 닥친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엄중한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여호람 왕이 하나님 앞에서 늘 행악을 일삼았음에도 하나님은 그를 두 차례나 도우셨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끝까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았으므로 하나님이 그로 하여금 참혹한 곤욕을 치르게 하셨고 급기야는 죽음을 면치 못하게 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쇠도끼가 물에 떨어진지라 이에 외쳐 이르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 온 것이니이다>(5절).
<빌려 온>이란 말의 히브리어 <솨울>은 <애걸하다> <구걸하다>는 뜻입니다. 즉 도끼를 물에 빠뜨린 선지 생도는 너무도 가난하여 도끼를 살 수 없었기에 이웃에게 애걸하여 겨우 빌려 온 것이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도끼 하나도 살 수 없는 가난한 생도였기에 이제 그걸 배상해줘야 할 처지가 되었으니 얼마나 난감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어디 빠졌느냐 하매 그곳을 보이는지라 이르되 너는 그것을 집으라 …>(6-7절).
엘리사 선지자가 행한 이 이적은 주님이 고기의 입에서 금화를 꺼낸 이적이나 오병이어의 이적 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현실적인 필요를 채워주시고 또 문제도 해결해 주시는 분이심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단순하고도 사소한 사건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도끼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늘 깨어 있지 않으면 우리의 소중한 믿음도, 영혼도 다 잃어버릴 수 있음을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생명을 잃어버리고 형식만을 붙잡고 사는 신자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잃었다 찾은 보화를 다시 잃지 않도록 잘 간직하십시오.
더욱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셔서 마귀에게 나의 소중한 것들을 빼앗기지 않는 복된 성도들 되시길 간절히 빕니다.
– 본문의 엘리사의 이적과 마 17:28, 눅 9:12-17에 소개된 주님의 이적을 비교해보십시오.
– 선지자 생도들이 왜 굳이 엘리사를 나무 베는 장소인 요단으로 모시고 갔을까요(3절)?
-나뭇가지를 물에 던져 쇠도끼를 떠오르게 한 엘리사의 이적에 대한 당신의 소감을 적어보십시오(6절).
엘리사를 통해 물에 빠진 쇠도끼가 물 위로 다시 떠오르게 하신 주님, 그 이적은 당연히 엘리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신 것이었습니다.
오늘 저희들의 물에 빠진 도끼도 모두 수면 위로 떠오르는 역사가 있게 해주시옵소서.
저희의 힘으로는 결코 쇠도끼를 물에 띄울 수 없사오니 주님이 친히 역사하사 물에 가라앉은 저희들의 무거운 과제들이 주님의 능력으로 다 물위에 떠오르는 역사가 있게 하사 <너는 그것을 잡으라>(7절)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