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S TV QT에서 옮겨왔습니다>
1. 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학한 그 성읍이 화 있을진저
2. 그가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의뢰하지 아니하며 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도다
3. 그 가운데 방백들은 부르짖는 사자요 그의 재판장들은 이튿날까지 남겨 두는 것이 없는 저녁 이리요
4. 그의 선지자들은 경솔하고 간사한 사람들이요 그의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하였도다
5. 그 가운데에 계시는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시거늘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도다
6. 내가 여러 나라를 끊어 버렸으므로 그들의 망대가 파괴되었고 내가 그들의 거리를 비게 하여 지나는 자가 없게 하였으므로 그들의 모든 성읍이 황폐하며 사람이 없으며 거주할 자가 없게 되었느니라
7. 내가 이르기를 너는 오직 나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 그리하면 내가 형벌을 내리기로 정하기는 하였지만 너의 거처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그들이 부지런히 그들의 모든 행위를 더럽게 하였느니라
<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학한 그 성읍>(1절)이란 대체 어디를 두고 한 말씀일까요?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이<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의뢰하지 아니하며 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다>(2절)고 하십니다. 그 거룩한 성이 이제는 악명 높은 곳이 되었고 언제나 정욕만을 좇아 육체의 쓸 것만을 잔뜩 쌓아놓고 포식하는 게걸스러운 성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 외면적 삶이 어떠한 모습으로 치장되어 있든 보다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중요함은 우리 자신이 지금 딛고 있는 자리의 기초가 어떤 것인가를 되돌아보는 일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 되돌아봄의 철저함이 없으면 오늘 우리도, 과거 예루살렘도 어느 날엔가는 삶의 그 밑바닥에서부터 철저하게 무너져 내리는 뼈아픈 고통을 피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총체적인 자기 변혁의 열병>을 앓지 않고서는 결국 <진실과 공의로움이 존재하기 어려운 소망 없는 시대>가 재생산되고 지속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 역시도 그런 시대와 삶의 급류 속에 휩쓸려 과연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도 모를 혼돈의 와중에 살면서 함께 붕괴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스바냐 시대 예루살렘이 바로 그랬습니다. 그럼에도 문제는 그들이 그 더러운 물결의 검은 포말을 흑진주쯤으로 알고 움켜쥐려는 어리석음에 깊이 빠져있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선지자들은 경솔하고 간사한 사람들이요 그의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하였도다>(4절). <너는 오직 나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 그리하면 내가 형벌을 내게로 정하기는 하였지만 너의 거처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들이 부지런히 그들의 모든 행위를 더럽게 하였느니라>(7절).
어느 때나 패역한 시대를 위해 필요한 것은 예루살렘처럼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성채가 아니라 그것이 무너진 터 위에 세우는 순종과 겸손과 사랑입니다.
-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패역하고 더럽고 포학한 성읍으로 추락했을까요?
-스바냐 시대의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은 어떠했습니까?
-<너는 오직 나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7절)며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하시겠다고 합니까?
주님,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도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고, 교훈을 받지 않고, 여호와께 의뢰하지 않으면 결국 패역하고 더러워지고 포학한 성읍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습니다. 스바냐 시대의 예루살렘은 참혹했습니다. 백성들은 물론 방백들, 재판장, 선지자, 제사장들까지도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욕되게 했습니다. <그들이 부지런히 그들의 모든 행위를 더럽게>했다고 했습니다. 오늘 저희도 말씀에 자신을 비춰보며 회개하게 하시고 새롭게 결단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