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S TV QT에서 옮겨왔습니다>
22.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23.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24.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25. 큰 회중 가운데에서 나의 찬송은 주께로부터 온 것이니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
26.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27.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28.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29. 세상의 모든 풍성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
30. 후손이 그를 섬길 것이요 대대에 주를 전할 것이며
31. 와서 그의 공의를 태어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
여러분은 하루에 얼마나 주님을 찬양하십니까? 우리의 입술에 찬양이 없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시편 22편을 읽어보면, 이 시편이 찬양이라는 생각을 절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특히 시편 22편 1절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모든 고통을 받으실 때 하나님께 했던 절규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고백을 다윗이 하고 있다는 것은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고백을 담아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편이 믿음의 찬양인 이유가 있습니다.
3절부터 다윗이 고백하는 것을 보면, 다윗은 그의 선조들의 삶을 돌아보며 절망의 상황에서 항상 구원해 주시고 인도해 주셨던 하나님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절망스로운 상황이지만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실 것을 믿음으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찬양은 선포라고 합니다. 우리의 눈에는 절망뿐이지만,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선하신 분이심을 기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윗도 선조들의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온전한 믿음이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22절부터의 고백을 보면, 다윗은 자신의 실제의 삶에서 역사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실제로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니, 하나님은 항상 신실하게 모든 곳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에 자신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인도해 주셨던 분이었음을 기억하게 됩니다. 찬양은 막연하거나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었던 시간들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나아갔을 때, 하나님의 구원해 주셨던 신앙의 간증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이 경험들이 있습니다.
찬양은 삶에서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하나님 앞에서의 고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찬양은 단순한 노래가 아닙니다. 찬양은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선물입니다. 오늘 시편을 비롯하여 많은 시편은 고난 중에 하나님을 만난 간증입니다. 다 잘되고 성공한 다음에 찬양한 것이 아니라 고난 중에서 찬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절망 속에서도 절절하게 하나님을 찾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찬양은 고난 중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고난의 상황에서 찬양을 시작하는 하루를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찾으며 찬양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렇게 행하셨던 것처럼 그 믿음의 찬양대로 인도해 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의 삶속에서 절망스러운 상황에 닥쳤을 때,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을 찾아봅시다.
주님!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시작하기 원합니다. 오늘 삶에서 느끼는 절망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찬양을 시작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분명 모든 것을 회복해주시고 나를 구원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