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S TV QT에서 옮겨왔습니다>
26. 에벳의 아들 가알이 그의 형제와 더불어 세겜에 이르니 세겜 사람들이 그를 신뢰하니라
27. 그들이 밭에 가서 포도를 거두어다가 밟아 짜서 연회를 베풀고 그들의 신당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며 아비멜렉을 저주하니
28. 에벳의 아들 가알이 이르되 아비멜렉은 누구며 세겜은 누구기에 우리가 아비멜렉을 섬기리요 그가 여룹바알의 아들이 아니냐 그의 신복은 스불이 아니냐 차라리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후손을 섬길 것이라 우리가 어찌 아비멜렉을 섬기리요
29. 이 백성이 내 수하에 있었더라면 내가 아비멜렉을 제거하였으리라 하고 아비멜렉에게 이르되 네 군대를 증원해서 나오라 하니라
30. 그 성읍의 방백 스불이 에벳의 아들 가알의 말을 듣고 노하여
31. 사자들을 아비멜렉에게 가만히 보내어 이르되 보소서 에벳의 아들 가알과 그의 형제들이 세겜에 이르러 그 성읍이 당신을 대적하게 하니
32. 당신은 당신과 함께 있는 백성과 더불어 밤에 일어나 밭에 매복하였다가
33. 아침 해 뜰 때에 당신이 일찍 일어나 이 성읍을 엄습하면 가알 및 그와 함께 있는 백성이 나와서 당신을 대적하리니 당신은 기회를 보아 그에게 행하소서 하니
<… 밤에 일어나 밭에 매복하였다가 아침 해 뜰 때에 당신이 일찍 일어나 이 성읍을 엄습하면…>(32-33절).
아침은 음모의 시간이 아니며 죽음이 지배하는 시간이 아닌 것을 아비멜렉은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어쩌다 <밤의 시간>에는 증오와 탐욕이 도를 넘어 활활 불타오를 수도 있습니다. 또 누구나 해가 기울면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음모에 가담하고 싶어질 수도 있습니다. 거리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숨겨져 있던 죄의 본능이 꿈틀거릴 수도 있고, 또 광명이 사라진 진리에는 낙담과 좌절이 그 인생을 짓누를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어스름 저녁 불빛에 유혹의 덫을 행복의 문인 줄로 알고 덥석 손을 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침 해 뜰 때>가 되면 욕정을 가라앉히고, 죄는 눈처럼 녹고, 유혹의 덫은 그 추한 민낯을 드러내야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밤의 모습으로 살고 있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생명의 길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인생이란 누구나 죄에 물드는 자신을 구해내기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새 <아침 해가 떠올랐음에도> 여전히 어두운 삶을 고집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어리석고 비극적인 인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복음의 나팔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날 때만 밤은 어느덧 소멸하고 아침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죄의 시간은 여명의 빛 속에서 과거의 땅속으로 완전히 묻어 버려야 합니다. 이미 결별한 밤의 자리로 되돌아가려는 것은 인생을 거꾸로 사는 것이며, 죄를 매장해 버린 무덤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것과 같은 꼴입니다. 그동안 어둠 속에서 현혹 당했던 모든 것들이 실은 다 죽음의 미소였음을 깨우치는 음성에 영혼의 문을 열고 생명의 근원을 향해 발길을 옮길 때 비로소 우리를 사로잡고 있던 모진 <마법의 주문>에서 풀리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새해와 함께 우리의 삶에 아침이 오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본문의 아비멜렉과는 달리 인생의 갈림길에서 더 이상 헤매지 않고 고비고비마다 온전한 결단을 내릴 수 있기를 간절히 빌어봅니다.
-<에벳의 아들 가알>(26절)이란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당신의 인생은 현재 <밤> 혹은 <아침>, <낮> 중 어느 때라고 생각하십니까?
-로마서 13:11-14 말씀을 옮겨 적어보십시오.
주님, 조금이야말로 자다가 깰 때임을 깨닫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그만큼 가까웠으므로 모든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을 때임을 깨닫습니다.
부디 낮처럼 단정하게 행하여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육신의 일을 도모하기보다 영적인 일에 더 관심하며 결단하며 살게 해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