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S TV QT에서 옮겨왔습니다>
7. 사람들이 요담에게 그 일을 알리매 요담이 그리심 산 꼭대기로 가서 서서 그의 목소리를 높여 그들에게 외쳐 이르되 세겜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그리하여야 하나님이 너희의 말을 들으시리라
8. 하루는 나무들이 나가서 기름을 부어 자신들 위에 왕으로 삼으려 하여 감람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우리 위에 왕이 되라 하매
9. 감람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게 있는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한지라
10. 나무들이 또 무화과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 위에 왕이 되라 하매
11. 무화과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단 것과 나의 아름다운 열매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한지라
12. 나무들이 또 포도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 위에 왕이 되라 하매
13. 포도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내 포도주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한지라
14. 이에 모든 나무가 가시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 위에 왕이 되라 하매
15. 가시나무가 나무들에게 이르되 만일 너희가 참으로 내게 기름을 부어 너희 위에 왕으로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 하였느니라
<… 세겜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 하루는 나무들이 나가서 … 자신들 위에 왕으로 삼으려하여…>(7-8절).
요담은 매우 창의적인 우화로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는데 여기 등장하는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등은 나름대로 귀한 재능을 사용하여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분수를 넘어 과욕에 빠지지 않는 겸허한 인간상을 대변하고 있습니다(롬 12:3).
반면 14, 15절에 등장하는 가시나무는 아무런 자격이나 재능도 없이 오직 협박과 공갈로 왕권을 가로챈 아비멜렉을 비유하고 있습니다(시 12:8, 전 10:6). 그런데 요담의 이러한 경고는 실제 그대로 성취됩니다.
<모든 나무가 가시나무에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 위에 왕이 되라>(14절).
나무들이 가시나무의 무익함과 그 해악에도 불구하고 굳이 <왕이 되어 달라>고 요청한 것은 스스로 파멸을 자초한 큰 실수였습니다. 한편 이러한 무모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가시나무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선뜻 그 요청을 접수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을 배제하고 인간적 욕구와 취향에 따라 스스로 절대적 보호망을 만들고자 하는 부단한 인본주의적 노력을 상징합니다. 언제나 이같은 지극히 우매하고 무모한 대중의 열망이 자기 분수를 모르는 파렴치한 지도자의 허세와 결탁하여 사회와 역사의 멸망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내 그늘에 피하라>(15절).
가시나무에는 원래 그늘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 나무 밑에 피한다는 것은 오히려 가시에 찔리는 행위와도 같습니다.
이처럼 요담은 세겜 사람들에게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은 행위야말로 그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최악의 선택이었음을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가시나무>와 <레바논의 백향목>(15절), 우리들에게도 4월 총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본문에 소개된 <요담의 우화>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본문의 <가시나무>는 누구를 겨냥한 비유일까요?
-가시나무를 제외한 본문에 나오는 나무들을 다 적어 보십시오.
주님, 그리심산 꼭대기에서 외친 요담의 얘기가 진정한 예언이고 경고였습니다.
가시나무는 협박과 공갈로 권력을 가로챈 아비멜렉에 대한 비유였고, 실제 그것은 그대로 다 성취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정작 능력 있고, 양심적이고, 책임감 있는 사람보다는 그야말로 가시나무 같은 존재들이 나서고 설치며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권력을 꿰찹니다. 그래서 역사는 더욱 뒷걸음질 치고 무고한 사람들은 더 많은 피를 흘리며 모진 아픔을 겪습니다. 저희도 총선을 몇 달 앞두고 있사오니 부디 이 나라를 기억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