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S TV QT에서 옮겨왔습니다>
46.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47.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우리가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광신도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광신도가 되는 것과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광신적”이라는 말은 “물불 안 가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신실하게 하나님을 믿기 원하십니다. 자신의 신앙에 대해서 광신적인 믿음을 갖는 것도 문제이지만, 자신이 속한 교회, 목사에 대해서 광신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광신도가 되면 하나님이 가장 중요한 부분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정작 하나님이 말씀하신 본래의 의미는 사라지고 오직 개인과 공동체의 이기적인 것에 근거하여 신앙생활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광신적인 신앙으로 가려고 하는 제자들을 예수님께서 꾸짖는 장면입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지 전에 사마리아 지역을 가게 되셨는데, 제자들은 예수님이 오신다고 하면 사마리아 지역의 사람들이 나와서 예수님을 맞아들이고 말씀을 들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예수님을 맞아들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를 보고 화가 난 야고보와 요한이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말합니다. 그 때 예수님은 그들을 꾸짖으십니다. 여기에서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자신을 잡으러 온 로마 군인을 향하여 베드로가 칼을 휘둘러 귀를 떨어뜨렸을 때도 예수님은 베드로를 말리시며 오히려 그를 치유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이 행동을 보면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예수님을 거부하던 사람들이 결국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게 된 사건들에는 이와 같은 예수님의 사랑이 밑바탕 되어져 있습니다. 자기를 미워하는 원수마저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그들은 “저 분은 분명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물불을 가리지 않으며, 광신적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 헌신하기를 원하시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신의 자존심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해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광신적인 행동을 한 이유 중 하나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과 예수님께 집착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셨지, 인간에게 집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희생하기 원하지 않으시고 자신이 희생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사람들을 희생시키지 않고, 오히려 그들 앞에 무릎을 꿇음으로 그들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도록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욕하는 사람들을 저주하는 것이 예수님을 위한 일이라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예수님께 집착하며 사람들에게 무례하게 행하는 신앙이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그들을 애타게 찾으시는 예수님을 위해 사람들 앞에서 자존심을 내려놓고 무릎 꿇을 수 있는 삶이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제자들처럼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착각했던 부분은 있었는지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회개함으로 돌이킵시다.
주님! 주님을 욕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내가 그들을 저주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도 사랑하시고 돌아오기를 원하시며 그들 앞에 무릎 꿇고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주님, 오늘 나도 그 길을 믿음으로 걸어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